이 이야기는 지난 세기, 카타 키라는 아름다운 병원으로 유명한 마토 지역을 배경으로 합니다. 마토는 당시에도 지금처럼 잦은 눈보라로 바위 봉우리에 눈이 두껍게 쌓여, 사실상 통행이 불가능한 지역이었죠. 하지만 들고양이에게는 이 거친 땅이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그래서, 두 시대 전...

친구들과 숨바꼭질 놀이를 하던 어린 고양이 리안은 삼나무 나뭇가지를 위에 쌓인 눈을 털어내며 해맑은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리안의 귀 뒤에는 자신의 무리가 선물한 나뭇잎 모양의 금빛 브로치가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정말 평온한 하루였죠! 젊음과 생기가 넘쳐 흘렀습니다! 하지만 그날의 겨울 공기 속에선 뭔가가 느껴졌고, 리안은 그 느낌에 이끌려 숲 속 깊은 곳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민첩하게 눈더미를 피하고 쓰러진 나무를 뛰어넘으며 달리고 또 달린 리안은 이내 눈 위에 쓰러진 한 남자를 발견했습니다. 이미 얼어서 숨도 쉬지 않는 듯했죠...

고양이들 사이에서 인간은 다소 무례하고 서투른 동물로 통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남자는 지금까지 본 사람 중 가장 아름다웠습니다. 남자의 속눈썹에 눈송이들이 내려 앉아있었습니다. 그때, 보라색 입술이 약하게 떨렸습니다... 맙소사, 아직 살아있었습니다! 리안은 이 불쌍한 남자의 옷깃을 물고 숲 바깥으로 끌고 나갔습니다. 몇 시간 후, 도시 외곽이 보였습니다. 리안은 가장 가까운 집으로 가서 앞발로 문을 두드린 다음, 안전한 덤불 속으로 돌아가 재빨리 몸을 숨겼습니다. 덤불에 몸을 숨긴 후에야, 리안은 집 현관에 놓아둔 남자 옆에 자신의 브로치를 떨어뜨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가지러 가기엔 이미 늦었죠. 리안은 근처에서 인기척을 느끼고 다시 숲으로 도망쳤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리안은 마음 한편에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던 아련한 아픔을 느꼈습니다. 이 느낌은 뭐죠? 어디에서 온 걸까요? 얼어붙은 남자의 모습이 떠오른 순간, 리안은 자신이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불가능할 텐데요! 리안은 남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걸요!

같은 시각, 불과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리안이 구해준 남자가 의식을 회복했습니다. 원인 모를 슬픔이, 생면부지의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이 느껴졌죠. 히로시라는 이 남자는 두 발로 설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자마자, 나뭇잎 모양의 황금 브로치를 손에 꼭 쥐고 숲으로 달려갔습니다. 자신을 구해준 소녀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몰랐지만, 왠지 다시 만나면 바로 알아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숲을 아무리 뒤져도, 사냥감을 쫓는 사냥꾼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한편 리안은 마음의 병이 점점 심해져, 하루하루 고문과도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리안은 외딴 굴에 홀로 들어앉아 난생처음으로 자신의 종족을 원망했습니다. 리안의 꿈은 이제 오직 하나, 사랑하는 이를 만날 수 있도록 인간이 되는 것이었죠. 절망에 빠진 리안은 몸을 웅크린 채 울다 지쳐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은 평소보다 눈을 뜨기가 더 힘들었습니다. 눈을 뜨면 또다시 반복될 지루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죠. 결국, 베고 있던 손에 감각이 없어질 때쯤에서야 리안은 일어나 앉으며 눈을 떴습니다. 베고 있던... 손!? 튕기듯 일어난 리안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인간이 되었잖아!!” 천 조각으로 대강 몸을 가린 리안은 추위도 잊은 채 밖으로 뛰쳐나가 강가로 뛰어갔습니다. 강물을 들여다본 리안의 눈에 들어온 것은 익숙한 고양이의 모습이 아닌 검은 머리칼의 아름다운 여인이었습니다. 귀여운 고양이 귀와 우아한 꼬리만이 이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죠. “그 남자를 찾아야 해!”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습니다. 리안은 마을로 달려갔습니다. 리안의 새로운 몸은 놀라울 정도로 위화감이 없었으며, 가볍고 경쾌한 움직임에 행복한 기분까지 차올랐습니다.

숲의 끝자락에 접어들자 벌써 지붕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거기, 그가 있었습니다. 히로시는 은인을 찾는 일을 단념하지 않았고, 오늘도 황금 브로치를 손에 들고 숲으로 향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고, 서로가 자신의 두 눈을 의심하며 얼어붙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일까요? 기쁨도 잠시, 남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습니다.

히로시가 갑자기 리안 쪽으로 달려오더니 몸을 날려 리안을 넘어뜨렸습니다. 그와 동시에 근처에서 무언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힘겹게 몸을 일으킨 리안은 사랑하는 이를 돌아봤습니다. 쓰러진 히로시가 고개만 겨우 들어 리안을 바라보았습니다. 미소를 짓는 히로시의 잠시 눈을 반짝이더니, 이내 빛을 잃고 힘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고개를 돌린 리안의 눈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사냥꾼의 총이 보였습니다. 다시 바라본 히로시의 가슴에서는 붉은 얼룩이 서서히 번지고 있었습니다. 사냥꾼! 리안을 뒤쫓고 있던 겁니다. 집 현관에 히로시를 두고 돌아올 때 느꼈던 것은 사냥꾼의 기척이었습니다. 리안이 목표였던 것이죠! 사냥꾼을 본 히로시가 즉시 상황을 이해하고 소녀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것입니다.

리안의 눈에서 눈물이 얼어붙고 목에서 뭔가가 차올랐습니다. 하지만 상실의 아픔은 곧 불타는 복수심으로 바뀌었습니다. 리안이 급하게 총을 재장전하는 사냥꾼에게 시선을 돌렸습니다. 리안의 눈이 냉혹한 유리구슬처럼 변했습니다. 증오에 사로잡힌 리안이 쏜살같이 사냥꾼에게 돌진했습니다. 본능적으로 떨리는 손을 펼친 리안이 상대에게 보라색으로 반짝이는 고통의 구슬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때마침 여우 무리를 이끌고 근처를 지나던 사토리가 아니었다면, 하얀 눈밭이 온통 붉게 물들었을 것입니다. 사토리는 다급히 리안을 말렸습니다. 리안을 진정시킨 사토리는 자신의 이야기와 가디언에 합류하게 된 정황을 들려주었습니다. 사토리는 뜨거운 사랑으로 각성한 리안의 새로운 능력도 빛을 위해 사용하는 게 어떻겠느냐며 함께 가자고 제안했습니다.

한편 살인자 역시 대가를 치렀습니다. 이국적인 전리품을 손에 넣으려던 사냥꾼은 결국 스트롱포드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그의 마음이 어둠에 잠식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죠. 오랜 정화와 회복의 과정을 거친 후, 그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여생을 리안에게 속죄하는데 바쳤습니다.